요즘 코카서스 3국 여행이 조금씩 알려지고 있지만, 12년 전만 해도 '코카서스'라는 이름조차 낯설었습니다. 그때 처음 발걸음을 옮긴 아제르바이잔, 조지아, 아르메니아. 유럽과 아시아 사이 어딘가에 자리한 이 작은 나라들은 제게 잊을 수 없는 기억을 선물했습니다.
얼마 전 조지아를 다시 찾게 되었습니다. 출발을 앞두고 12년 전 사진들을 뒤적이던 중, 가슴이 따뜻해지는 장면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바로 조지아의 한 전통 농가에서 찍은 사진들이었죠. 그곳에서 느꼈던 진심어린 환대는 정말 특별했습니다. 서유럽의 세련된 레스토랑에서는 절대 맛볼 수 없는, 마음이 담긴 시골 음식과 가족 같은 따뜻함. 그것이 바로 코카서스 여행의 진짜 매력이었습니다.
사진 속에는 전통 복장을 입고 바비큐를 준비하던 주인아저씨와 그 가족들의 모습이 담겨 있었습니다. 이번에도 그 농가에서 식사가 예정되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작은 계획을 세웠습니다. 혹시 아저씨가 기억하실까 싶어 몇 장의 사진을 휴대폰에 저장해두었거든요.
다만 한 가지 걱정이 있었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여행객들이 이곳을 거쳐갔을 텐데, 예전 그 순수한 감동이 여전할까 하는 마음이었죠. 드디어 그 농가에 도착했습니다. 멀리서 우리 일행을 마중 나오시는 주인아저씨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1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저는 그분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예전보다 조금 더 풍채가 좋아지시고 이마가 넓어지셨지만, 그 따뜻한 미소는 그대로였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예쁜 손주들이 저희를 반겨주고 있었죠. 음식 맛도, 그 정겨운 분위기도 예전과 다름없었습니다.
식사가 한창 무르익을 무렵, 용기를 내어 아저씨께 12년 전 사진들을 보여드렸습니다. 아저씨의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그리고는 정말 기뻐하시더군요. 젊은 시절 자신의 모습을 보며 흐뭇해하시는 아저씨를 보니, 뿌듯했습니다. 누군가에게 소중한 추억을 선물하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음 사진을 보여드리는 순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조지아 전통 악기를 만드시던 할아버지의 사진이었는데, 아저씨의 눈시울이 붉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알고 보니 10년 전에 돌아가신 아저씨의 아버님이셨던 거예요. 단순히 추억을 나누려던 마음이었는데, 이렇게 소중한 기억을 함께 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조심스럽게 그 사진을 아저씨께 전해드렸습니다. 농가를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했습니다. 언제 다시 이곳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아저씨와 그의 아들, 그리고 손주까지 3대가 함께하는 사진을 찍었습니다.
12년 전 낯선 땅에서 받았던 따뜻한 마음이, 이제는 제가 누군가에게 전해줄 수 있는 소중한 선물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여행이 우리에게 주는 진짜 의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