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쿠 남쪽 고부스탄의 사암 지대. 2만 년 전 누군가 이 바위에 사냥과 춤을 그렸습니다. 가르니에서는 로마 시대 신전이 서 있고, 우플리스치케에서는 바위를 깎아 만든 고대 도시가 남았습니다. 다비드 가레자에서는 6세기 수도사들이 판 동굴이 지금도 그대로입니다. 이곳 사람들은 돌에 자신들의 시간을 새겼습니다. 바위에, 동굴에, 성당에. 그 흔적들이 지금도 똑같은 자리에서 우리를 기다립니다. 2천 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그들이 남긴 것 앞에 섭니다. 무언가 단단한 것 앞에서 잠시 멈춰 서게 됩니다.
코카서스 산맥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세반 호수는 해발 1,900m에서 푸르게 빛납니다. 게르게티 성당으로 오르는 길, 창밖으로 펼쳐지는 산세는 압도적입니다. 카즈베키에서 바라본 설산은 여름에도 흰 눈을 이고 있습니다.
아짜트 계곡의 주상절리를 따라 가벼운 트레킹을 합니다. 계곡이 만든 절경 앞에서 자꾸 걸음을 멈추게 됩니다. 이 땅의 자연은 사람을 작게 만들고, 동시에 무언가를 채워줍니다.
301년 아르메니아는 세계 최초로 기독교를 국교로 정했습니다. 에치미아진의 성 마더 성당은 그때 세워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입니다. 즈바리 수도원, 게그하르트 수도원, 하그파트 교회. 이름도 낯선 이 성당들은 모두 천 년 이상을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신앙인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이곳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건 종교가 아니라 시간입니다. 천 년을 이어온 돌과 벽 앞에서, 우리는 잠깐 흐르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시그나기는 조지아 카헤티 와인 산지를 조망하는 도시입니다. 이곳 사람들은 8천 년 전부터 포도를 키우고 와인을 빚어왔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와인 문화가 이곳에 있습니다. 포도나무 그늘 아래서 갓 구운 고기와 이 땅에서 난 와인을 마십니다. 코카서스인들의 환대에 자연스레 웃음이 식탁은 웃음으로 가득해집니다. 각 나라의 로컬 음식은 그 자체로 문화입니다. 하나하나가 이 땅의 역사와 기후, 사람들의 삶이 담긴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쉐키칸 사라이 궁전의 스테인드글라스는 못 하나 쓰지 않고 만들어졌습니다. 시그나기는 실크로드 상인들이 머물던 중세 도시입니다. 바쿠의 시르반샤 궁전, 트빌리시의 나리칼라 요새. 이곳은 동서양이 교차하던 길목이었습니다. 지금은 조용한 이 도시들이 한때는 온갖 언어와 물건들로 북적였을 것입니다. 그 시절의 흔적이 지금도 골목과 건물에 배어 있습니다. 우리는 그 시간을 따라 천천히 걷습니다.